고통의 신비들에 대한 묵상을 통해, 동산에서 예수님의 몸부림치는 고통은 너희에게 무엇을 의미하느냐? 예수님께서 당하신 채찍질은 너희에게 무엇을 의미하느냐?
슬픈 가시관은 너희에게 무엇을 의미하느냐?
십자가와 함께 예수님의 세 번의 쓰러지심은 너희에게 무엇을 의미하느냐?
그리스도님의 십자가 처형과 죽음이 너희에게 무엇이더냐? 그리고 그분의 옆구리를 창이 찔렀을 때 흘러나온 물과 피의 가치는 너희에게 무엇이냐?
이러한 공덕들의 위대함을 너희가 이해하느냐?
너희의 존재와 자의식의 일부에서, 이러한 모든 사실과 그리스도님의 진정한 체험들이 울려 퍼질 수 있다.
그것들이 왜 울려 퍼져야 하느냐?
왜냐하면 이 신비들과의 교제 안에서, 너희가 그리스도님과의 완전한 교제 안에 있을 것이고, 너희의 자의식 속에서 언젠가는 변형되어야 하는 모든 것을 구속주의 모든 공로로 대체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이기 때문이다.
그러므로 각 단계에서 고통의 신비들을 대 승리를 하는 것으로서 실행하고, 그리스도께서 순복하셨던 것을 체험하여라.
모든 것을 용서하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, 하느님의 사랑의 가장 깊은 실현으로서 각 고통의 신비를 실행하여라.
이것이 바로 내 아드님의 사랑의 체험의 본질이다: 인류가 이 유산을 활용할 수 있도록 그분의 유산을 세상에 남긴 것이다.
나는 나의 부름에 응답하는 너희에게 감사한다!
너희에게 은총을 베푸시는 분,
너희의 어머니이신 동정녀 마리아, 평화의 장미